집이 없다고 가정을 버려서야 | 수산나의 세상사는 이야기 2

수산나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우연찮게 읽게 되었는데, 나 어릴적 추억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내용들이 있어서..

출처: http://blog.daum.net/ttodasi/144

키가 나지막한 할머니 한분이 86세가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러 식구 살림을 사십니다. 어지간하면 노인정에 가서 친구 분들과노시거나 집안에 계시기에 적당한 연세이신데도 집안에 살림을 살 주부가 없다보니 매일 식사준비와 빨래 청소 등 남자들을 보살피기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으로는 상처한 60대 아들과 30대 후반의 손자 그리고 초등학생인 증손자 2명 4대가 살고식구가 총 5명입니다. 60대 아들은 상처 후에 병이 들어서 생활능력이 없으시고 할머니가 농사짓던 땅은 손자가 사업 한다고하다가 망해서 시골에 있던 집과 함께 다 없애고 방 하나짜리 지하 원룸에서 다섯 식구가 삽니다.



손자며느리는 남편이 사업을 하다 빚만 지고 어려워지자 어린 아들 둘을 할머니께 맞기고 돈 벌어 오겠다면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 후몇 년째 소식이 없습니다. 30대 손자가 그나마 조금씩 벌어오는 것으로 먹고 사는데 살림을 사는 할머니의 고민이 말이 아닙니다.초등학생이지만 소소하게 돈이 많이 들고 아이들이라 좁은 집안에 있기 싫으니까 할머니께 때를 써서 돈을 얻어내어 오락실로 가곤하는데 할머니께서는 말려볼 엄두도 못 내고 돈이 있으면 손자들에게 털립니다. 정부에서 기초노령연금이라고 해서 65세 이상인분들에게 연금을 드리는 것이 있는데 할머니와 아드님 두 분이 받는 것을 합해서 수입이 없는 이분들에겐 연금이 요긴하게 쓰입니다.여유가 있는 분들에겐 작은 돈이지만 이 가정엔 수입의 전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런 정책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다."는 말씀이 과장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계셔서 그나마 밥을 끓여 남자들 네 명을먹이시는데 할머니가 안 계시면 당장 다들 굶게 생겼습니다. 다행인 것은 "죽을 수도 없는" 상황 때문에 긴장을 하고 사셔서그런지 그나마 연세 높으신 할머니께서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이 유지됩니다. 일은 해야 하고 기운이 없으실 때는 반짝 하는 맛에박카스를 드시기 시작해서 이제는 매일 두세 개를 드실 정도로 중독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박카스 할머니"로 부릅니다.할머니께서 살아오신 거며 며느리가 병으로 돌아가신 얘기 손자가 사업하다가 털어먹고 손자며느리 도망간 얘기....그런 얘기를하시면 꼭 연속극을 보거나 소설책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할머니가 계셔서 그 가정이 유지되고 있는것을 알기에 할머니는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한다고 말씀 드리면 증손자들이 제 손으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을 때 까지만 살면좋겠는데 나이가 많아서 어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10년 정도 더 사시면 96세가 되시는데 그때까지 건강이 잘 유지되어가정이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고 증손자들이 잘 자라길 바래봅니다.


요즘 젊은 분들 중에는 행복은 나누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닥친 불행도 인내하기 싫어하는 것을 봅니다. 나름대로 사정은 있겠지만어린 아들을 팔순노인에게 맞기고 나가서 혼자 어디서 지내면 마음에 고통이 없겠습니까? 아이들을 버리고 나가서 뭘 한들 마음이편하겠습니까? 자기가 낳은 자녀만이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기르면 좋겠습니다. 내 친구만 해도 자녀들이 어릴 때 남편이 병들어누웠는데 혼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든 남편 돌보면서 자녀를 훌륭히 키워냈고 그런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에 순종하고따라 가는 모습이었는데 요즘엔 불행을 인내하기 보다는 던져버리고 뛰쳐나가는 일을 많이 봅니다.  할머니의 증손자 두 명은 동사무소에서 방학 중에 공부를 가르쳐주고 밥도 주는 공부방이 있어서 그곳으로 갑니다. 국회에서는 만날싸움으로 지새지만 정부에선 의료보험이나 의료보호제도 영세민 보호대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낳은 자녀를 당연히책임져야 하는 부모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방임 되는 아이들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녀를 7남매나 두셨습니다. 몇 번 말씀을 드렸지만 집이 없어서 평생 남의 집으로 이사를 떠돌았습니다. 혼자몸이라면 이사도 쉽고, 뜨고 날기도 간편했겠지만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다니는 이사가 오죽했겠습니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족은 뭉쳐서 살았습니다. 집은 없었지만 부모님의 사랑으로 가정이 건재했습니다. 방 두 칸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면서도 아버지께선우리 형제들에게 공부를 가르치셨습니다. 옥수수 죽으로 연명한 저녁에도 두리반에 자녀들을 불러 앉히고 음표를 가르치고 사회를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오라버니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면 우리는 놀이삼아 옆에서 덩달아 운율을 따라 외웠고  온음표는 사과 한 개, 이분음표는 사과 반쪽 이런 식으로 사과를 그려 가면서 음표의 박자수를 익히게 하셨고 오선지에 콩나물을그려서 도래미파를 읽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서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산 이름과 강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텔레비전도없던 옛날이라 공부밖에 특별히 놀 거리가 없었습니다. 심심하니까 오라버니 국어 교과서도 미리 읽어 보고 동생들도 내 교과서를미리 한 번씩은 다 읽어 봅니다. 어깨 너머로 구구단도 외웠겠다, 음표도 공부 했겠다 교과서는 미리 다 읽어 봤겠다, 학년이올라가는 것에 어려움이 덜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선행학습을 한 셈입니다.



오라버니를 앞에 앉혀놓고 공부를 가르치는 아버지 무릎에 아버지 턱을 바치고 앉아서 아는 척을 하다가 오라버니 눈총을 받기도했습니다. 오라버니께 묻는 말을 냉큼 받아서 내가 대답을 합니다. 집 앞에 흐르는 강 이름이 뭐냐고 하시면 들은풍월로 압록강!집 뒤에 있는 산 이름이 뭐냐 물으시면 백두산! 이런 식이었는데 어쩌다 한 번 맞으면 아버지께서 "넌 동생 보다못하냐?"이러시며 오라버니를 야단 치셨습니다. 동생이 참 얄미웠을 것 같은데 마음씨 좋은 오라버니는 지금도 저의 가장 좋은지지자이고 후원자 입니다. 동생보다 못하다고 야단맞던 오라버니는 서울대를 들어가서 아버지를 기쁘시게 했고 잘난 척하던 저는그러지 못했습니다. ^^


잠자리가 좁아서 형제들이 머리와 다리를 반대로 해서 모로 누워서 잠을 자야할 때도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잠잘 공간을확보하지 못해 앉아서 자야하거나 다른 사람 머리맡에 쪼그리고 자기도 했습니다.(이 부분 읽으면서 유년 시절에 살던 집이 떠올랐다..) 그래도 집이 불편해서 집을 떠나 살아보고 싶다거나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가 있는 우리 가정이 가장 좋은 줄 알았습니다.국수와 옥수수 죽으로 연명을 하면서도 우리 형제는 다 학교를 다녔습니다. 국가적으로 어렵고 수출과 공업화를 외치던 70년대전후에 내 친구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서울로 돈 벌러 갔습니다. 우리 집보다 형편이 좋은 집에서도 그랬는데 우리처럼 가난한집에서 자녀들을 다 학교에 보낸다고 주위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우리 아버진들 누구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왜없으셨겠습니까만 자녀를 가르치려는 의욕이 대단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기에 등록금을 제때에 내지 못해 선생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아버지께 때를 쓰거나 학교에 가기 싫다거나 등록금달라는 말을 못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사셨던 여선생님이 담임이셨는데 베니어판으로 된 넓적한 출석부로등허리를 때리면서 "어차피 낼 등록금인데 왜 늦게 내느냐?"고도 하시더군요. 말씀은 맞는데 없어서 못 내는 사정을 이해하지못하시고 하복을 입은 겨드랑이 안쪽을 사정없이 꼬집어서 멍이 들기도 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그런 어려운 모습을 보이면서도학교는 결석하지 않고 개근을 했으니 참 신통한 일입니다. 그래도 집에 와서 부모님께 등록금 못 내서 맞았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않았습니다.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괜히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기는 싫었거든요. 우리아버지 평생 집 한 칸 없이고생만하고 가셨는데 그 고생과 희생의 대가로 우리 7남매는 순탄하게 잘 자랐습니다. 집은 없었지만 가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형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엔 조금 어려우면 자녀를 버리고 엄마가 집을 나가거나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죄 없는 자녀들은 늙은 조부모에게 떠 맞기고 식사와공부는 국가가 떠안고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힘들더라도 가족을 끌어안고 힘을 합해서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것 같은데 그러지못한 무책임하고 나약한 부모들의 모습을 주위에서 자주 보게 되어 걱정이 많습니다. 집이 있어도 가정이 없고  집도 없고 가정도없는 어려운 일들이 누구의 책임인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 같은 마음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고생을 낙으로 삼으면 머지않아 좋은날들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해 드리고 싶답니다. 옥수수 죽이나 국수로 끼니를 잇고도 삶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두리반에 어린자녀를 옹기종기 앉혀놓고 사과를 그려가며 공부를 가르치시던 우리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 봅니다. 요즘같이 어려울수록 가정을중심으로 뭉쳐서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덮고 가도 좋을 나의 초라한 과거를 들추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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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성공은 부모의 모범과 노력으로 부터 나온다는 말.. 우리 어머니도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 배움은 누가 훔쳐가지 못하는 평생의 자기 재산이라고 늘 말씀 해주시던 것이 생각난다...

외국에 나와있다보니, 더 그리워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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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라 | 2009/08/10 01:15 | 아네스라 일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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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수형 at 2009/08/15 03:59
안녕하세요, 아네스라님.
작년 초에 어쩌다가 아네스라님 블로그를 발견하고, 꾸준히 찾아와 글을 읽고 가는 유령 네티즌입니다.
미국에서 회계 공부를 하는 터라 컨설팅, IT 감사 등등을 검색하다가 아네스라님 블로그를 발견했던 게 기억나네요.
공부만 해봤지 '실무의 세계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참 반가운 발견이었습니다.
요즘도 아네스라님의 포스팅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걸 알았다는 데에 즐거워 하기도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그저 아네스라님을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졸업을 하고 미국 CPA 공부를 하면서 마냥 취업 준비만 하고 있는 저로서는 아네스라님이 부럽기 그지없거든요.^^

아무튼, 그동안 그냥 눈팅만 했었는데, 갑자기 고마운 생각이 들어 이렇게 댓글을 남겨봅니다.
좋은 글들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 얻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Commented by 아네스라 at 2009/08/16 19:32
누추한 저의 블로그가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요즘은 출장나와있고 한동안 여유가 없어서 글을 잘 못올렸었는데,
이렇게 글을 남겨주시니 다시 좀더 활발히 글을 올려야겠네요.
저도 주의 다른 분들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요.
다른 분께 도움이 된다면 그 아니 좋지 않겠습니까. :)
Commented by 진짜 서울사람 at 2009/11/24 16:02
어려웠던 시절에 이야기가 주마등같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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